논쟁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로스 스미스 경을 위해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식사 도중 내 곁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 일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한다"는 말을 인용해 가며 재미있게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 재담꾼은 자기 인용의 출처가 성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내가 틀릴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인정을 좀 받고 싶기도 하고 잘 난 척 하고 싶은 생각도 좀 있어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뭐라고요? 셰익스피어 작품이 출처라고요? 그럴리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건 성경에 나온 말이에요. 분명해요. 재담꾼은 내 왼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오른쪽 자리에는 내 오랜 친구이자 셰익스피어 전공자인 프랭크 가몬드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재담꾼과 나는 가몬드에게 판단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가몬드가 듣고 있다가 탁자 밑으로 내 발을 툭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카네기, 자네가 틀렸네. 저분 말씀이 맞네. 그건 성경에 나온 얘기라네."
집으로 오면서 나는 가몬드에게 말했다. "프랭크, 자네도 그 말이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온다는 거 알고 있었지?" "물론이고 말고." 그가 대답했다. "햄릿 5장 2막에 나오는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친구야, 우리는 축하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이잖아. 그사람 틀린 거 확인해 무엇에 쓰겠나? 그러면 그 사람이 자넬 좋아할것 같나? 그 사람 체면 상하지 않게 놔두면 좀 어때? 자네에게 맞나 틀리나 물어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사람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네. 그런데 와 그걸 가지고 다투나? 항상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게나."
"항상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라." 이 말을 해준 친구는 이제 가고 없다. 하지만 그가 가르쳐준 교훈은 영원히 남아 있다.
그것은 내게 꼭 필요한 충고였다. 당시 나는 습관적으로 논쟁 벌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형과 이 세상 모든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했다. 대학에 가서는 논리학과 토론법을 배웠고, 토론 대회에도 많이 참가했다. 토론 하면 미주리 지역 사람들을 드는데, 맞다. 난 미주리에서 태어났다. 나도 미주리 사람답게 증거를 보여주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 뒤 나는 뉴욕에서 논쟁과 토론 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때는 그 주제로 책을 쓰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수천 가지의 논쟁에 대해 경청도 하고, 비판도 하고, 참가도 하면서 논쟁의 영향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는 것처럼 논쟁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
거의 언제나 논쟁은 양측 참가자 모두가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논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 지면 그냥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는 것이다. 왜 그런 것 같은가? 만일 여러분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지작해 상대방을 묵사발 낼 정도로 이겼다 치자.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여러분 기분이야 좋겠지만 상대방은 어떻겠는가?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상대방은 여러분의 승리에 이를 간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승복한 사람은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A man convinced against his will Is of the same opinion still.)
펜 상호생명보험사는 보험 판매원들에게 명확한 기준 하나를 제시해 지키게 하고 있다.
"논쟁하지 말라!"
("Don't argue")
나폴레옹의 집사장인 콩스탕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과 가끔 당구 경기를 하였다. ╔나폴레옹의 사생활 회고록╝ 1권73면에서 콩스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실력이 더 낫긴 하였지만 나는 언제나 황후에게 승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면 황후는 무척 기뻐했다."
콩스탕에게서 영원한 교훈 하나를 배우자. 혹시라도 사소한 논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의 고객, 연인, 남편과 아내가 이길 수 있게하자.
부처님은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해결할 수없다. 사랑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고 말씀하셨다.
오해 또한 논쟁을 해서 풀리지 않는다. 상대의 심정을 헤아려 적절히 대응하고, 상대를 위로할 때, 그리고 상대방 관점에서 보고자 할 때에야 풀리게 돼 있다.
링컨은 언제나 동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젊은 장교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사사로운 논쟁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더군다나 논쟁을 하고 나면 성격이 모가 나거나 자제력을 잃는 결과가 생길 테니 더욱 문제 아닌가. 자네도 옳고 상대도 옳다면 가능하면 자네가 양보하게. 자네가옳고 상대가 옳지 않더라도 사소한 일이라면 양보하게.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 보다는 개에게 길을 양보해 주는 게 낫지. 물리고 나면 개를 죽이더라도 상처는 남지 않겠나."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뿐이다.
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
어느 날 저녁 나는 로스 스미스 경을 위해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식사 도중 내 곁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 일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한다"는 말을 인용해 가며 재미있게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 재담꾼은 자기 인용의 출처가 성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내가 틀릴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인정을 좀 받고 싶기도 하고 잘 난 척 하고 싶은 생각도 좀 있어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뭐라고요? 셰익스피어 작품이 출처라고요? 그럴리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건 성경에 나온 말이에요. 분명해요. 재담꾼은 내 왼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오른쪽 자리에는 내 오랜 친구이자 셰익스피어 전공자인 프랭크 가몬드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재담꾼과 나는 가몬드에게 판단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가몬드가 듣고 있다가 탁자 밑으로 내 발을 툭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카네기, 자네가 틀렸네. 저분 말씀이 맞네. 그건 성경에 나온 얘기라네."
집으로 오면서 나는 가몬드에게 말했다. "프랭크, 자네도 그 말이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온다는 거 알고 있었지?" "물론이고 말고." 그가 대답했다. "햄릿 5장 2막에 나오는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이 친구야, 우리는 축하하기 위해 모인 손님들이잖아. 그사람 틀린 거 확인해 무엇에 쓰겠나? 그러면 그 사람이 자넬 좋아할것 같나? 그 사람 체면 상하지 않게 놔두면 좀 어때? 자네에게 맞나 틀리나 물어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사람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네. 그런데 와 그걸 가지고 다투나? 항상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게나."
"항상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라." 이 말을 해준 친구는 이제 가고 없다. 하지만 그가 가르쳐준 교훈은 영원히 남아 있다.
그것은 내게 꼭 필요한 충고였다. 당시 나는 습관적으로 논쟁 벌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형과 이 세상 모든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했다. 대학에 가서는 논리학과 토론법을 배웠고, 토론 대회에도 많이 참가했다. 토론 하면 미주리 지역 사람들을 드는데, 맞다. 난 미주리에서 태어났다. 나도 미주리 사람답게 증거를 보여주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 뒤 나는 뉴욕에서 논쟁과 토론 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때는 그 주제로 책을 쓰려는 생각도 했었다. 그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수천 가지의 논쟁에 대해 경청도 하고, 비판도 하고, 참가도 하면서 논쟁의 영향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는 것처럼 논쟁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
거의 언제나 논쟁은 양측 참가자 모두가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논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 지면 그냥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는 것이다. 왜 그런 것 같은가? 만일 여러분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지작해 상대방을 묵사발 낼 정도로 이겼다 치자.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여러분 기분이야 좋겠지만 상대방은 어떻겠는가?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상대방은 여러분의 승리에 이를 간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승복한 사람은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A man convinced against his will Is of the same opinion still.)
펜 상호생명보험사는 보험 판매원들에게 명확한 기준 하나를 제시해 지키게 하고 있다.
"논쟁하지 말라!"
("Don't argue")
나폴레옹의 집사장인 콩스탕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과 가끔 당구 경기를 하였다. ╔나폴레옹의 사생활 회고록╝ 1권73면에서 콩스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실력이 더 낫긴 하였지만 나는 언제나 황후에게 승리를 양보하였다. 그러면 황후는 무척 기뻐했다."
콩스탕에게서 영원한 교훈 하나를 배우자. 혹시라도 사소한 논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의 고객, 연인, 남편과 아내가 이길 수 있게하자.
부처님은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해결할 수없다. 사랑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고 말씀하셨다.
오해 또한 논쟁을 해서 풀리지 않는다. 상대의 심정을 헤아려 적절히 대응하고, 상대를 위로할 때, 그리고 상대방 관점에서 보고자 할 때에야 풀리게 돼 있다.
링컨은 언제나 동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젊은 장교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사사로운 논쟁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더군다나 논쟁을 하고 나면 성격이 모가 나거나 자제력을 잃는 결과가 생길 테니 더욱 문제 아닌가. 자네도 옳고 상대도 옳다면 가능하면 자네가 양보하게. 자네가옳고 상대가 옳지 않더라도 사소한 일이라면 양보하게. 내가 먼저 가겠다고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 보다는 개에게 길을 양보해 주는 게 낫지. 물리고 나면 개를 죽이더라도 상처는 남지 않겠나."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뿐이다.
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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